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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각

좋은일을 하고도 왜 나쁜 생각이 머리를 맴돌까?

by 매일 글 한개 2023. 12. 31.
매일글한개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고도 나쁜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던 적이 혹시 있을까?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내가 그랬다.

현재 유엔 난민기구(UNHCR)에 11년이 넘게 매달 후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국내의 독거노인들의 자립을 돕는 자선단체에도 매달 후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수영장을 다녀오다가 유니세프(UNICEF) 후원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을 다들 많이들 겪어 보았을 것이다.
현재 어느 지역에 어린이들이 처한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그 어린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물어보고 3~4가지 답안 중 하나에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방식이다.
처음엔 갈 길이 바빠서 그냥 가려 했는데 설문조사 후 스티커만 붙여주면 된다는 말에 설문에 응했다가 잠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붙잡혀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체 직원들은 아주 절실하게 나에게 후원을 요청했었다.
난 지금 다른 단체들에 후원을 하고 있는 곳들이 있어서 더 이상의 후원은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더 나를 붙잡고 완강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때 솔직히 내가 받았던 느낌은 "한번 후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 후원을 요청하기가 쉽다. 그러니 더 몰아붙여서 설득하자!"라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난 후원하는 곳이 있어서 추가 후원은 힘들다고 말한건 이해를 바라고 했던 말이었는데 돌아온 반응이 내가 생각한 거랑 달라서 조금 당황했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오랫동안은 후원을 안 해도 되니 좋은 마음으로 후원을 해달라고 계속해서 부탁해왔다.
일주일이 넘게 그 추운 자리에서 하루 종일 후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한 명도 후원을 해준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감정까지 자극했다.
혹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난 그 일주일 동안 후원을 몇 명에게 받았으면서 나를 후원하게 만들기 위해서 한 명도 후원을 해주지 않았다는 말을 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만약 그런 거짓말로 후원을 받고 있다면 자선단체가 아니고 사기 단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거짓말로 사기를 치고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영하의 겨울 날씨는 너무도 춥고, 그 추운 날 후원 요청을 하는 가냘픈 20대 여성들이 참 안쓰러웠고, 그리고 식량이나, 주거지, 치료제가 없어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얼마 안 되는 돈이어도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일은 크리스마스이지 않는가? 하고 내면의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여러 곳에 후원을 하고 있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난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로운 상태도 아니다.
그리고 후원을 계획하고 있던 상태가 아니었는데 갑자기 생각에도 없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반복되는 후원 요청에 머리는 더 어지러웠다.
결정은 내려야 했고, 어찌 되었건 좋은 쪽으로 결정을 내리자는 마음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후원을 결정했다.

"그래 오랫동안 후원을 안 해도 된다고 했으니, 몇 달 만이라도 해보고 그 뒤에 끊도록 하자! 크리스마스에 나도 좋은 일을 해보자"
내가 하는 행동의 결과가 내게 금전적으로 손해는 발생하기는 하나, 내가 받은 금전적인 손해는 모두 좋은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내면의 나를 그 생각으로 더 다독였다.

좋은 일로 후원을 하고 돌아섰는데 마음 한편으로는 개운치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나 갑작스럽게 결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후원은 마음이 동하는 게 중요하다.
떠밀려서 하는 후원이 아닌 내가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뒤 내 의지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후원을 누군가에게 요청한다면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현재 지원해 줘야 하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만 해주고, 지금 결정이 어려우면 다음에라도 길에서 그 단체를 만나게 되면 후원을 부탁한다고 이야기하고 결정할 시간을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알릴 수 있는 팸플릿이나 아니면 QR코드가 새겨진 입간판 X 배너를 세워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언제든 열람해 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계속 알리면, 어느 순간 결정을 하고 마음이 동한 사람들은 후원 약정을 위해 다가오지 않을까?

자선단체에서 조금은 더 주도적으로 후원 요청을 하는 이유는 경기가 많이 어려워지면서 후원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든 결과도 있을 것이다.
후원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더 능동적으로 후원 요청을 하게 되고, 사람들은 또 그런 모습이 싫어서 후원 요청을 할 경우 쳐다보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악순환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선순환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좋은 일을 하고 왔지만 이번 일을 통해서 느낀 점과 배운 점이 있다.
우선 길에서 자선단체들에서 설문조사를 해달라고 하면 바로 피할 것이다.
유인물을 나눠줄 경우 받고 읽어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내가 충분한 생각을 하고 계획했던 일이 아니라면 바로 결정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해야지 뭐든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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